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클럽 제로를 보고 왔다. 다만 섭식 장애와 관련된 장면에서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영화의 시작부터 나오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보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 작품은 엘리트 학교에 새로운 영양교사가 나타나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인데, 블랙 코미디 장르에 속하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미니멀하게 구성이 되어있으며, 이야기 자체는 단선적이고 심플한 편이다. 영화는 거대담론들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고민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정성일 평론가의 GV를 들었으며, 그 후기 역시 조만간 올려볼 예정이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한다.
엘리트 학교에 새로 등장한 영양 교사인 미스 노박은 학생들에게 의식적으로 먹기를 가르치며 적게 먹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음을 학생들에게 설파한다. 많이 먹음으로써 생기는 문제를 근거로 대며, 학생들을 설득해 나간다. 학생들이 그 지도를 따르자 미스 노박은 이제 아예 먹지 않아도 된다고, 먹어야 한다고 하는 것도 통념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주장의 강도를 높인다. 당연히 학생들이 집에서도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부모와의 갈등을 유발하는데, 노박 선생님은 이것 역시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학생들을 계속해서 가스라이팅한다.
학생들이 계속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을 본 부모들은 어쩌면 노박 선생님이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아이들을 맡기지만, 정작 아이들은 노박 선생님과 더 한 팀이 되어 무려 크리스마스날 가출하게 된다. 유일하게 그 현장에 없었던 헬렌에게 사라진 아이들의 부모들이 여러 이야기를 묻다가, 헬렌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과 엔딩 장면은 완벽히 대조되는데, 마지막 장면은 정말 소름 끼쳤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이 떠오르지만 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무척 무력한 기분이 드는 느낌이었다. 아마 감독이 작품에 대해 의도한 느낌도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무력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작품을 보는 내내 무력함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분명 노박 선생님은 어느 선을 넘어서 아이들을 세뇌하고 있는데, 그 세뇌에서 꺼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가스라이팅이 차근차근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생들 내면에 있는 감정을 이용해 잘못된 신념, 믿음을 계속 강화해 나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노박 선생님은 종교적인 특성을 많이 가진 캐릭터이다. 기독교적인 캐릭터이기도 하고, 불교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면 감독이 의도한 종교에 대한 관점은 무엇일까. 일단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믿음은 주는 특성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흐름을 처음 봤을 때는 이해가 어려웠는데, 곱씹어서 생각해 보고 GV를 듣고 나니 감독은 완벽히 냉소적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거대 담론에 싸우는 것이 이렇게 간단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믿음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대답은 당연히 No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우화 같으면서 우울하다. 하지만 이 흐름 자체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단순한 서사에 특이한 효과음이 섞인 영화 정도로 보고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이야기하는 바는 알겠는데, 나 역시도 이러한 영화보다는 더 잘 짜이고 파괴적이지 않은 영화가 아직까지는 더 좋다.
관람일 2024.01.24.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정성일 평론가 라이브러리톡)
개인적 평점 3.5 (3.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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