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s/Review

<영화 리뷰> 오펜하이머 (OPPENHEIMER)

표본실 2023. 12. 2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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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
평점
7.2 (2023.08.15 개봉)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캐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관람일 :
2023.08.15. (압구정 IMAX관)
2023.08.18. (용산 IMAX관)
2023.09.11. (압구정 IMAX관)


개인적 평점 4.5 (4.6) / 5.0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부터 관심이 주목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전기 영화이다. 리뷰를 쓰기 전에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다 읽으려고 했으나, 두꺼운 평전을 읽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 다 읽지는 못하고 리뷰를 작성했다. 이제는 VOD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평전을 다 읽지는 못했다. 사실 IMAX관에서만 이 영화를 감상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에서 VOD로 이 영화를 즐겨도 내가 느꼈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훌륭한 영화이기 때문에, 어떤 매체를 통해서 감상해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펜하이머 평전을 다 읽지 못한 것처럼, 전기 영화는 지루하기 십상이지만, '플롯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있는 놀란 감독답게 다층적인 플롯으로 지루함은 빼고, 긴장감은 부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한 시간여는 《덩케르크》 마지막 부분의 세 시점의 교차가 떠올랐다. 또한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오펜하이머를 묘사하기 위해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핵폭탄 개발의 기승전결에 맞춰서 묘사한 것은 정말 훌륭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원자폭탄을 오펜하이머와 완전히 합쳐서 생각하게 된다. 전기 영화를 이 완성도로, 이렇게 긴장감을 가지고 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이 놀란이었고, 영화의 소재가 오펜하이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덩케르크》에서는 세 시점의 교차가 일어난다면, 오펜하이머에서의 시점 교차는 세 시점, 넓게 보면 네 시점이 얽혀있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시점,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의 회상 시점, 스트로스의 청문회 시점, 스트로스의 청문회에서 스트로스의 회상 시점으로 볼 수 있는데, 같은 사건을 회상하더라도 두 회상은 컬러와 흑백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컬러로 묘사된 지점은 오펜하이머의 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흑백으로 묘사된 부분은 스트로스의 시점, 그것을 확장하자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점 간의 교차는 집중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시점의 대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큰 비교 대조 구조 하에서 진행된다. 두 사람 모두 <TIME>지에 얼굴이 실리며, 청문회를 겪었으며, 그 청문회를 재판과 같이 생각하다가 지적을 당하기도 하며, 그 청문회의 결과 상당 부분 몰락한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오펜하이머의 시점은 ‘핵분열’로, 스트로스의 시점은 ‘핵융합’으로 제목이 달려 있는데, 핵분열과 핵융합의 관계를 고려하면, 오펜하이머의 존재가 스트로스가 겪는 사건을 유발했으며, 두 인물이 시차를 이뤄 비슷한 결과를 촉발시킨다는 것을 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와 그의 인생을 막연히 찬양하기보다는 그의 어둡거나 모순되는 부분을 충분히 묘사하고 있으며, 애초의 그의 추락이 시작되는 굴욕적인 비공개 청문회의 빌미 역시 본인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인간적인 결함 역시 많이 드러낸다. 또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그 개발이 성공한 직후에는 신나 하지만, 그 뒤로는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수소폭탄 개발에는 망설임을 보이며 군축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관객은 그래서 좋았다는 거야 나빴다는 거야 생각을 하며, 오펜하이머가 겪었던 심리적 혼란의 반의반의반이라도 따라갈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영화 내에서 정말 모두가 훌륭한 연기를 했지만, 킬리언 머피는 대단하게 오펜하이머를 연기했다. 오펜하이머의 실제 사진도 꽤나 여러 장 봤음에도, 영화의 중 후반부부터는 그가 오펜하이머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조연과 단역 중에서는, 오펜하이머를 대질심문하는 패시 대령과 로저 롭 검사(실제로는 검사가 아니다.) 배역의 연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오펜하이머의 일생에서 긴장감을 부여하고, 그를 전락시키는 역할을 맡은 두 배역이 훌륭했기에, 영화 내에서 몰입감과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역시 오펜하이머의 관점에서 그의 심리가 흔들리는 부분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는데, 그의 심리가 흔들릴 때마다 발소리가 마치 폭발을 앞둔 폭탄과 같이 들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 자체가 원자폭탄에 비유되는 것, 그의 감정 속에서도 수많은 폭발이 일어났던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오프닝과 엔딩 장면 역시 굉장하다. 오프닝과 엔딩 장면은 수미상관을 이루기도 하고, 특히 엔딩 장면은 작품의 시작에서 던졌던 복선을 회수하면서도 관객들에게 메시지와 여운을 남긴다. 



《인터스텔라》에서부터 과학에 대한 고증을 철저히 지키는 놀란 감독답게 작품 내에서는 많은 유명 과학자가 나오는데, 내가 과학 교과서에서 봤던 과학자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점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흥미를 계속 끌고 가게 했다. 특히 파인만이 봉고를 가지고 등장할 때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영화지만, 만점을 주지 않은 이유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CG를 쓰지 않기로 유명한데, CG를 사용하지 않고(혹은 조금만 사용해서) 묘사한 핵융합, 폭발, 연쇄반응 등을 묘사한 장면들에서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서 CG 없이 특수효과를 내는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특히 이러한 부분이 거대한 용산 아이맥스 화면에서 보이니 더더욱 약간의 조잡함이 느껴졌다. 



IMAX를 좋아하고 그에 따라 영화를 찍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였기에 1회차를 압구정 아이맥스에서 하고, 2회차를 용산 아이맥스에서 감상했다. 그리고 둘을 비교해 봤을 때 압구정 아이맥스가 화면은 더 작지만 더 알차게 느껴졌고, 3회차를 압구정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했다. 적어도 오펜하이머를 감상하는 데에는 압구정 아이맥스가 더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압구정 아이맥스관은 사운드 출력이 상당히 큰 편인데, 음악과 폭발음을 비롯한 여러 효과음이 크고 확실하게 들리는 것이 영화 내용의 전달에 큰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용아맥의 특장점인 1.43 화면비율도 인터스텔라나 덩케르크 같은 영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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