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s/Review

<영화 리뷰>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표본실 2023. 12. 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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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시 ‘애스터로이드 시티’ 이제 세상이 달라졌어요 1955년 가상의 사막 도시이자 운석이 떨어진 도시 ‘애스터로이드 시티’매년 운석이 떨어진 것을 기념하는 ‘소행성의 날’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그 곳에 옴짝달싹도 못한 채 갇히게 되고계속해서 생각지도 못한 예측불허 상황들이 펼쳐지는데…어쩌면 삶에는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요
평점
6.0 (2023.06.28 개봉)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제이슨 슈왈츠만,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제이크 라이언, 그레이스 에드워즈, 틸다 스윈튼, 애드리언 브로디, 에드워드 노튼, 마고 로비, 제프리 라이트, 브라이언 크랜스턴, 리브 슈라이버, 홉 데이비스, 스티브 박, 루퍼트 프렌드, 마야 호크, 스티브 카렐, 맷 딜런, 홍 차우, 윌렘 데포, 토니 레볼로리, 제프 골드블럼


관람일 :
2023.06.24. 1회차 (CGV 언택트톡)
2023.06.28. 2회차
2023.06.29. 3회차
2023.06.30. 4회차
2023.07.03. 5회차
 
개인적 평점 : 5.0 (4.8) / 5.0
 

 
5번의 감상을 마치고 썼던 리뷰를, 2023년 12월 26일 화요일에 넷플릭스에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공개된다고 해서 다시 정리해서 써본다.
 
복잡한 다중 액자식 구조를 보여주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동명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이다. 연극을 만드는 배경은 1955년이라서 흑백으로 묘사되며, 연극 안의 모습은 컬러로 묘사된다. 컬러로 묘사되는 부분의 영상미는 명불허전이다. 웨스 앤더슨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정말 아름답다. 사막을 표현하고 있는데, 더워서 갑갑하기보단 쨍한 색감이 아름다운 느낌이 먼저 든다. 오프닝 부분에서는 연극의 ‘조명 감독’에게 지시하는 듯하면서 이를 묘사하기도 한다.
 
오프닝에 신나는 음악이 나오며 첫 컬러 화면이 나오는 부분은 n회차 내내 신나고 벅찬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메인 주인공 가족의 세 딸은 볼 때마다 정말 귀여웠다. 캐스팅 찾아보니 세 딸은 성이 모두 같은 것 보니 아마 자매인 것 같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연극 내부의 이야기는 상실을 겪거나, 허무주의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소행성이 떨어진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겪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희망을 가지는 듯하게 극이 마무리가 된다. 물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와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얘기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며, 건조하고 선을 지키는 듯한 희망을 통해 묘하게 위로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의 한줄평이 '허무주의에 바치는 가장 메마른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힐링만 있는 것은 아니고, 몇몇 장면의 위트가 상큼함을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웨스 앤더슨 감독의 다른 작품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프렌치 디스패치》를 디즈니 플러스에서 보고 결정하면 될 거 같다. 두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할만하다. 특히 프렌치 디스패치가 취향 저격이었다면 강력 추천이다. 나는 프렌치 디스패치에도 만점을 줄 만큼 프디패를 좋아하는 취향이고 (그부페는 4.5/5.0), 이 작품도 만점을 주었다.
 
 
+) 추가적으로 후기들을 찾아보니 프렌치 디스패치와도 호불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함부로 속단은 어려울 것 같다.
 
 
 
밑으로는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굉장히 상하 움직임이 강조된다. 인물들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케이블카 등을 타기도 한다. 사막 (세트장)을 주된 배경으로 하는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는 인물들이 상하로 움직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좌우 움직임이 강조된 모습을 보이는데, 그 부분이 꽤나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리고 사라진 상하의 움직임은 외계인이나, 우주를 관찰하려는 모습들 위주로 채워지게 되는데 결국 맞춰지는 상하좌우의 밸런스도 좋았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프렌치 디스패치》와 가장 형식적 유사점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바깥의 액자에 있는 작가, 편집자의 죽음으로 연극, 잡지의 마무리가 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연극과 잡지가 예술의 은유라는 것을 고려하면, 웨스 앤더슨은 두 연속되는 작품에서 한 인물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이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영화 속 연극의 시작 부분에서 주인공 스틴백의 차에 ‘프렌치 프레스’가 적혀있는 걸 보고는 정말 반가웠다. 당연히 프렌치 디스패치에 바치는 오마주일 것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영화 자체에 정보량이 매우 많은 편이긴 하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압도적인 대사량과 텍스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그러하다. 기본적으로 구조 자체가 다중 액자 구조이며, 연기하는 배우의 극 중 모습과, 극 바깥에서 배우로서의 역할이 다른 것 때문에 여러 가지 내용을 혼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량이 많거나 복잡한 구조를 가진 영화에 적응을 힘들어하는 편이라면 감상에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듯하다. 여러 번 보면서 느낀 점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액자 속 연극에 몰입하지 못하게 거리를 두는 점이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대사는 의도적으로 작품의 바깥에서 언급된다. 오기 스틴백을 연기한 배우가 작가를 만났을 때, 그리고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배우를 연기한 부인’(의도적으로 이렇게 언급된다. 오기를 연기하는 배우가 오기 스틴백에 깊이 몰입했음을 나타내는 뜻일 것이다.)을 만났을 때 모두. 게다가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은 제4의 벽을 뚫어내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더더욱 복잡한 구조에 혼란을 느낄 수 있겠다.
 
1회차 때는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언택트톡을 들었는데,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지식을 설명해 준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작품의 배경인 1955년의 미국 사회에 대한 배경이 상당 부분 중요하게 여겨졌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밋지 캠블을 보면서, 마릴린 먼로가 약간 떠오르긴 했는데 여러 배경을 들으니 대놓고 그녀를 은유하는 속성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외계인이 녹색 등과 함께 등장하는 부분은 로스웰 사건을 은유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작품 전체가 웨스 앤더슨의 입장에서 1955년의 미국에 바치는 향수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전까지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는 유럽에 향수를 바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고향 미국의 향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존재 자체가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외계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2회차에서야 알았는데 사실 오프닝에서 이미 제프 골드블럼이 연기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건 명확하게 나왔다. 상실한 무언가에 대한 미련을 만드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가족의 죽은 아내의 유골과, 외계인이 가져갔다가 돌려주는 운석이 병치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연극 초반에 망가진 자동차를 고치기 위한 부품이, 외계인이 내려올 때의 우주선 부품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외계인과 그가 가져갔다가 돌려주는 운석은 상실한 대상 그 자체일 수도 있고, 미련을 만드는 대상일 수도 있어 보인다. 혹은 큰 변화를 만들며 화합을 만드는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외계인의 등장 전후로 연극 속 세상의 상식은 바뀌었고, 종교를 가지고 있던 우드로는 신을 믿지 않게 되며, 자신들의 자녀의 우월함을 가지고 싸우던 가족들은 군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향해 싸우기도 한다.
 
결국 영화 속 연극 속 대부분의 인간은 상실을 완벽히 치유하지 못하고,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쉽게 찾지 못한다. 오기 스틴백이 말하듯, “시간은 약이 될 수 없어, 반창고 정도면 모를까.”라며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우드로의 대사에서처럼 우주에는 답이 있지 않냐면서 답이 없는 요소에 답답함을 느낀다.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작품에 핵심 메세지인 “잠들지 않는다면 깨어날 수 없어.”는 지금의 어떤 문제가 상실이든, 허무이든, 결국 다음 기상을 위한 수면 상태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웨스 앤더슨은 아이들과 같은 마음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작품 내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대조된다. 작품 내의 어른들은 거리를 두고 대화하거나,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게임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낸다. 외계인이 등장한 이후에 모든 우주적 이데올로기가 바뀌었음에도, 유치원 교사 준은 변함없이 태양계에 대해 수업하려고 한다. 아이들은 그에 갇히지 않고 바로 외계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눈다. 오기 스틴백과 스탠리는 부인과 딸의 죽음 때문에 같이 살아야 되는 상황에서도 공간을 빌미로 갈등을 빚는 데 비해, 오기의 세 딸은 엄마의 유골을 두고 다시 살아날 거라는 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오기와 밋지 캠블은 사랑을 하는 것에 확신도 없고, 거리를 두면서 소통하지만, 그들의 아들딸은 호감 표현을 천체에 할 정도로 솔직하고 과감하다.
 
하지만 작품이 어른들을 마냥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각자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밋지 캠블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기와 본인이 좋아하는 연기가 다름에도 일단 본인의 연기 연습을 놓지 않는다. 오기 스틴백과 스탠리 잭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위-장인 관계이지만 아내이자 딸을 기억하며, 자녀이자 손녀들을 위해 같이 살려고 한다.
 
 
요약하자면 어린아이의 스스럼없는 자유로움을 가지면서, 어른의 책임감을 가진 상태에서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을 계속해나가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실을 겪을 수도 있고, 허무함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자아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인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는 ‘You can’t wake up if you don’t fall asleep.’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를 모두가 외치면서 실제 연극의 등장인물들이 자다 일어나는 장면으로 전환되는데, 이 장면 역시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삶을 사는 것도, 예술을 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처럼 잘 모르지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인 것이고, 일단 의미를 잘 모르겠어도 그대로 사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주제의식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주제의식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고, 그래서 정말 좋았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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